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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과 권력을 동시에 넘는 실험 - 강수돌(고려대 교수)
     
하늘팬더(김규용) 조회수 4,427   등록일자 2004-11-16 13:22:09
이윤과 권력을 동시에 넘는 실험: LETS 운동 / 강수돌(고려대 교수)
[2002. 10. 18(문화과학 2002년 겨울호)]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흔히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불안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삶의 전 과정이 화폐와 시장의 메커니즘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겉으로는 자유롭게 다니지만 속으로는 화폐와 시장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과 화폐란 물론 자본주의 상품 세계의 범주 안에서 규정된 것이다. 즉 시장이란 상품이 거래되는 공간이며 화폐란 그 상품의 가치를 재거나 거래를 매개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어떤 화폐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 어떤 상품도 합법적으로 시장에서 살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친구나 가족이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다른 편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도 있으나 이것도 보편화하기에는 현재로서는 너무나 버겁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경제는 돈벌이를 강제한다. 즉 돈이 많아 사업을 하든 노동능력과 노동의욕이 있어 임금 노동을 하든 뭔가 돈이 되는 일을 해야 삶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은 상품을 소비해야 행복에 이른다는 기본적인 패러다임 위에 모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벌려면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때 좋은 성적을 내거나 취업이 쉬운 학교 및 학과를 가야만 한다. 취업을 못해 실업자가 되면 굶주리거나 기아 임금으로라도 일을 해야 한다. 통탄할만한 신고전파 이론에 따르면 "일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에서의 실질임금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라 한다(꼬르드니에 2001). 취업을 하더라도 해고당하지 않고 성공하려면 상사에게 잘 보여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성과를 내어야 하며 충성을 다해야 승진을 하고 그래서 더 많은 돈과 지위를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오로지 소속된 조직에 혼신을 다해 공헌하고 저항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비록 파김치가 되고 과로사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만일 무능인으로 찍히거나 '불순분자'로 몰리거나 과잉 인력으로 분류되면 이는 인생의 실패나 죽음을 뜻한다. 꼬르드니에(2001)의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에 소개된 신고전파 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량으로 생산되는 실업자더러 "고용주가 제시하는 가격에 일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자유로운 여가를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그냥 내버려두라고 한다. 자본의 독재 아래 묵묵히 일하든지 아니면 굶어 죽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속에서 사는 우리 인생의 기본 밑그림이다.

바로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력을 강제로 팔지도 않고 억압적인 명령 체계 속에 일하지도 않으며 화폐의 수량이나 가시적 성과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경제 방식, 즉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해나갈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 내지 국가자본주의)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해보고자 했으나 역시 관료주의, 일당 독재, 낮은 효율성, 자율성과 창의성 부재 등의 문제로 좌절하고 말았기에 이것도 대안으로서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이른바 선진국의 케인즈주의적 복지 국가나 제3세계의 개발 독재 역시 국가사회주의 내지 국가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엘리뜨주의의 산물이었고 그러한 만큼 오류를 낳고 말았다. 더군다나 현재의 자본의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공세는 유래 없는 형태로 사회적, 생태적 삶의 토대들을 파괴하고 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시장의 독재도, 엘리뜨의 독재도 아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할지를 진지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바로 그 대안이 모든 풀뿌리 자신 속에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자율과 자치'의 원리를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등 모든 분야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을 외적인 것, 즉 시장 경쟁력이나 엘리뜨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참여하여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시장 권력, 화폐 권력에 우리 운명을 떠맡기는 것도 아니요, 정치 권력, 의회 권력에 우리 운명을 위임하는 것도 아닌,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그런 원리 위에 새로운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는 것이 새로운 화폐 운동이요, 새로운 거래 시스템(LETS: 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이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코진이 주창하는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에서도 소비-생산 협동조합과 더불어 LETS라는 새 경제권의 창조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자본-국민-국가' 시스템)를 근본적으로 넘어가기(양기) 위한 "내재적이며 초출적인 대항 운동"이라 자리매김되고 있다(가라타니 코진, 박유하, 2002, <녹색평론> 2002, 7-8, NAM과 지역통화운동). 요컨대 레츠 등 지역화폐 운동은 소유와 축적 중심의 생활방식을 관계와 나눔 중심의 생활방식으로 바꾸고자 하는 운동인 것이다.


2. 레츠의 유래

역사적으로 레츠의 기원은 1830년대 오웬의 노동증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1930년대 대공황기의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에서의 지역통화에서도 그 현대적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레츠는 원래 1983년 캐나다의 코목스 밸리라는 조그마한 섬마을 광산촌(코트내이)에서부터 마이클 린튼에 의해 시도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마이클 린턴은 80년대 초의 경제불황에 직면하여 실업자가 양산되어 이들이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도 살아가기 힘들게 된 상황을 보면서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현금을 소유하지 못하면 아무런 경제행위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은 정당한 것인가? 과연 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스스로 만들지 못하란 법이 있는가? 그는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중앙집권화된 통화제도를 따르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했다.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현금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고 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고 마지막에는 소수만이 만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 린턴은 이 실업자들만을 위한 새 화폐를 만들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초로 지방고용교역시스템(Local Employment and Trade System)이라 명명된 '코트내이 레츠'는 1983년에 시작되었는데 2년 후 회원은 500명에 이르렀으며 회원들간의 교역량은 달러로 환산하여 30만 달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레츠의 이념이 캐나다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레츠다. 한마디로, 레츠는 새로운 교환(시장) 시스템이고, 지역(공동체, 녹색) 통화는 이 새로운 호혜 시장에서 거래를 돕는 새 화폐이다.

호주 또한 레츠가 활성화된 나라로 200개 이상의 레츠 그룹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1/4 가량이 호주 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 최초로 교역을 시작한 곳은 퀸즈랜드에 있는 맬레니(Maleny) 지역의 조그만 '대안적인' 공동체에서부터였다. 이곳은 퍼머컬쳐(permaculture) 운동가인 질 조르단(Jill Jordan)의 고향으로, 마이클 린턴의 생각에 영향을 받았다. 이에 뒤이어 다른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레츠는 시드니 서부의 블루 마운틴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1991년 시작됐으며 1997년 봄에는 회원수가 2,000명에 다다랐다. 뉴질랜드 또한 레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95년에는 50개의 그룹이 활발하게 교역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유통되고 있는 지역통화 또는 공동체통화는 각양각색이다. 그 분류의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니시베 마코토 2002). 첫째는 통화의 단위 문제로서 노동시간을 취하든지 아니면 국민통화에 연결하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단위를 만들든지 하는 것이다. 둘째는 발행방식에 관한 것인데 중앙위원회가 구성원들의 동의 하에 지폐 같은 것을 발행하든지 아니면 장부방식으로 하여 거래 당사자가 +/- 계정만으로 사실상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으로 하든지 한다. 셋째는 이자나 가격의 결정 문제인데 제로 이자로 하거나 시간이 갈수록 화폐가치가 떨어지게 만드는(발행 이후 매월 1%에 해당하는 인지를 뒷면에 붙여야만 사용가능한) 식으로 해서 마이너스 이자로 하거나 한다. 거래 대상의 가격 결정도 완전히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하거나 우선 객관적 노동시간에 의해 정찰로 해 놓고 당사자간 조절이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현실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지역통화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겉모양으로는 기존 화폐와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는 대안적 화폐를 만들어 쓰는 방식이다. 미국 뉴욕의 이사카 시에서 폴 글로버(Paul Glover)가 만든 '이사카 아워' 같은 시스템이나 2002년 여름 충북 보은에서 쓰이기 시작한 '보은화폐'는 마치 기존의 중앙 은행이 발행한 화폐처럼 직접 인쇄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도록 하는 진짜 통화다. 물론 총 화폐량의 관리가 지역 거래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나 거래 내용물의 가치 측정이 거래당사간의 협의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 등이 중앙 화폐와 다르다. 둘째, 전표(버스표)나 수표 등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브라질의 꾸리찌바, 영국의 많은 지역과 독일과 헝가리 등에서는 전표나 수표, 또는 통장을 사용해 지역화폐를 유통시키고 있다. 일례로 브라질의 꾸리찌바에서는 1971년에 자이메 레르네르가 시장으로 선출되자 당시 골칫거리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서 한 봉지 가득 넣어 오면 누구든지 버스표(전표)를 하나 주었다. 또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쓰레기를 한 봉지 수거하면 공책을 하나씩 주었다. 이때 버스표는 일종의 보완화폐로서 대안화폐 기능을 한 것이다. 사실은 이미 170년 전인 1832년에 영국 런던에서 오웬이 실시한 노동증권이 그 원형을 이룬다. 이것은 그 재화의 생산에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이 표시된 증서로서 이를 매개로 생산물을 거래하는 것이다. 셋째, 손에 잡히는 화폐나 전표가 없이 단지 중앙 등록소에서 관리하는 +/- 계정만으로 통화를 운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에드가 칸(Edgar Cahn) 교수가 은퇴자들 가정이나 학군,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위해 개발해 시카고를 비롯 미국 내 많은 도시에서 운영중인 '타임달러' 시스템(www.timedollar.org)-일종의 자원봉사은행처럼 운영되는데, 여기서는 서비스의 종류에 관계없이 1시간의 서비스 제공에 1타임달러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됨-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지역통화제도를 일종의 은행 기능으로 보고 녹색화폐를 사용하여 계정을 만들어주고 이를 관리하는 방식이 있다. 이 실험 중 가장 진보적인 것은 세 번째 형태이다. 그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이 화폐 발행에 따르는 수량 관리 문제나 중앙 은행 시스템의 오류 반복 문제, 권력의 집중화 문제, 기존 경제 시스템과의 관계 문제 등의 여러 측면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96년부터 《녹색평론》(www.greenreview.co.kr)이 레츠를 소개하기 시작했고 '98년 3월에는 처음으로 신과학운동 조직인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미내사, www.herenow.co.kr)이 '미래화폐'(fm)란 이름으로 지역화폐 운영을 시작한 이래 미래여성클럽, 불교환경교육원, 인하대학교 내 인천정보센터, 중앙대 부설 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기술도구은행, 관악지역화폐 등에서 지역통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도서출판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작아장터, 교육관련 출판사인 '민들레'(mindle.org)의 민들레 교육통화 등의 지역통화운동도 있다. 나아가 서울시 송파구 자원봉사센터의 송파품앗이와 대구 동구청의 봉사품앗이, 안양시청 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지역화폐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다양한 지역화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부산녹색통화추진본부, 광주의 나누리(www.kjnanuri.or.kr), 전주의 전주품앗이, 현재 준비중인 청주시청,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등을 포함하면 국내의 지역통화제도는 조만간 약 50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러한 실험들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하나는 손에 잡히는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경우 거의 기존의 중앙 화폐 시스템을 닮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리의 문제나 권력 집중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등 기존 화폐 시스템의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둘째는 레츠 운동을 지방 정부나 관청이 주도하는 경우 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손상이 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융통성과 자율성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국가 기관의 담당자가 바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자생력을 갖지 못하고 소멸하게 되어버릴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안 화폐 및 대안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들의 구체적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앞에서 간략히 살핀 마이클 린턴 같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상부상조하는 연대의 시스템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토불이, 즉 소규모의 지역적 교환을 활성화시켜 자생력과 자립성을 기름으로써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두 계기 모두 시장과 권력의 일방성과 강제성, 비생태성 등을 적극적으로 뛰어넘고자 하는 대안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대전의 '한밭레츠'(tjlets.or.kr)를 탄생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박용남씨의 경우(녹색평론 60호, 2001년 9-10월호 참조), '위로부터' 만들어진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에게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일깨워준다. 그는 파스퇴르유업에서 생산한 매실요구르트를 별 생각 없이 대전의 한 슈퍼마켓에서 사 마시고 난 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 그 매실요구르트 병에는 "원유 79.89%(국산), 매실시럽 6.8%(매실 50%-대만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완제품 매실요구르트를 하나 생산하기 위해 횡성까지 국내의 많은 지역에서 원유를 수집해오고, 매실의 절반은 국내, 나머지 절반은 대만에서 수입해오고, 나아가 요구르트 병의 원료는 우리가 모르는 국내의 어떤 지역 또는 외국에서 수입해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요구르트의 생산지인 횡성에서 다시 소비지인 대전까지 많은 수송 에너지를 들여 운반을 해오고, 이를 우리가 마시고 난 후 빈병을 재활용업체에 넘겨주면서 요구르트의 기나긴 생애는 끝이 난다. 이러한 매실요구르트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지구자원이 낭비된 것일까? 독일의 '부퍼탈연구소'에서 슈투트가르트 시의 딸기 요구르트를 대상으로 수행한 한 사례 연구는 폐기과정을 제외하고 그 이동거리가 대략 8,00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박용남씨가 마신 요구르트의 원료인 매실은 독일-폴란드 사이처럼 근거리도 아닌 대만에서 수입해온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수치는 아마도 더욱 클 것이라 본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지속 불가능한 생산, 유통, 소비, 폐기 시스템을 갖고 있기에 우리 삶의 양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재조직해야 한다. 박용남씨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 위에 '한밭레츠'라는 지역통화 운동을 펼쳐나갔다. 물론 아직도 그 규모나 참여도가 썩 내세울만한 정도는 못되지만 그 기저에 있는 철학, 즉 화폐에 대한 통제수단을 지역공동체가 갖고, 유휴상태의 기술과 자원을 다시 순환시킨다면 사회경제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만큼은 대안적인 싹을 충분히 안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레츠란 국가나 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풀뿌리 주민들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선물처럼 주고받는, 연대에 기초한 자립적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이들이 교환의 매개로 사용하는 것이 공동체 화폐, 혹은 녹색화폐이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3000개 이상의 레츠 조직이 만들어져 운용 중이며 지금도 많은 곳에서 준비중이다.


3. 레츠의 원리와 특징

레츠의 근본 원리와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과 그 매개체인 자본주의 화폐의 본질적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적극적인 싹을 레츠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가라타니 코진의 말대로, 레츠는 "노동하지 말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경고와 "자본제 상품을 사지 말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경고를 동시에 실천함으로써 자본관계를 지양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가라타니 코진 2002). 아래서는 그 원리와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실명성

레츠에서는 각 거래 행위, 즉 경제 행위의 모든 주체들이 실명 거래를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상호 신뢰와 배려에 기초한 인간적 관계가 형성되며 따라서 공동체가 '아래로부터' 만들어진다. 나아가 거래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에 관한 흥정이 직접적인 인간관계 속에 이루어짐으로써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무미건조하고 비인격화된 상품 거래에서는 찾기 어려운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실명 거래란 각자가 제공하는 것에 대해 실명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채소 하나를 생산하더라도 누가 먹을 것인지를 아는 경우 또는 누가 먹는지를 나중이라도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농약과 제초제를 쓰면서 생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돈만 벌겠다는 일념 하에 높은 생산성만 추구하는 현재의 생산 및 거래 시스템은 모두가 익명성 아래서 움직인다. 익명성은 거래의 속도는 증가시키지만 거래의 책임은 현저히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나중에 불특정 다수에게 남는 것은 건강 파괴, 공동체 파괴, 생태계 파괴 따위이다. 따라서 실명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생산 및 거래 관계는 마침내 잃어버린 인간성은 물론 인간 상호간의 인간적 소통성을 다시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탈이윤

레츠 공동체에서는 각 개인이 화폐 발행의 책임 있는 주체가 된다. 나아가 회원 전원의 +계정과 -계정의 총액이 서로 상쇄되어 0으로 되기 때문에 그 어떤 착취나 이윤도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와 이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가져가는 자본가가 별개로 존재하기에 착취나 축적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레츠 시스템에서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공급하는 사람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레츠에서는 생산자가 공급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레츠에서는 투자나 투기를 통한 수익 극대화라는 목표는 물론, 무한 축적을 위한 잉여가치의 생산과 착취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기증식을 위한 화폐, 즉 자본은 발붙일 곳을 잃는다. 나아가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팽배한 부채나 이자 개념(남김의 경제)도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한 미래 노동력의 저당잡히기 사태(지배와 억압)는 본원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수평적이고 호혜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즉시 모든 것이 완결되면서 순환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렇다고 애정과 봉사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무상 노동'이나 그에 따르는 '심리적 빚'도 여기서는 있을 수가 없다(가라타니 코진 2002). 모든 참여자가 상대방의 피와 땀과 눈물의 가치를 서로 존중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레츠에서는 회원들 상호간에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에 교환가치를 위한 거래가 아닌 사용가치를 위한 거래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교환가치가 없는 사용가치조차, 즉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거래되지 못하는 물품과 서비스조차 상대방에게 유익하기만 하다면 거래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윤이 아니라 필요를 위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를 위한 생산이 촉진된다. 결국, 최소한 이 시스템 안에서는 자본관계나 무상노동이 지양된다. 만일 이런 시스템이 지역 단위를 넘어 온 세상을 단위로 할 적에는 비록 그 지역생물주의적 의미는 약화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파괴적으로 치닫는 범지구적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잠재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가라타니 코진이 설명하는 NAM에서는 가상 공간에서도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더 이상 지역통화가 아니라 시민통화라 부르고 있다(가라타니 코진, 2002).

자립성

레츠에서는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실제적, 실천적 능력과 그를 위한 삶의 지혜가 중요시된다. 지금의 화폐 시스템에서는 삶에 필요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막론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기에 한편으로는 돈에 대한 탐욕과 무한 소비 욕구가 생성, 확장되고 다른 편으로는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자율성, 독자성, 자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생활의 화폐 의존도 심화라는 동전의 양 면을 이룬다. 결국은 삶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삶 자체를 포기해야만 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돈이 나왔는데 오히려 돈이 삶을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현상, 바로 이것은 노동 소외와 마찬가지로 '화폐 소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레츠와 같이 참여자 자신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되 이를 모두(거래 참여자가 누구이건)를 위한 것으로 지혜롭게 쓰는 경우 삶의 독립성을 유지,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삶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그런 구상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유용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더욱 높은 수준의 지혜도 싹터 나오게 될 것이다. 한편 레츠는 거래 참여자 모두가 주인으로 역할하며 그 어떠한 소외된 권력도 자리잡을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외적 권력이 그 구성원 위에 군림할 여지가 없다. 더구나 레츠의 참여자들은 스스로 '적자 발행'까지 할 수 있기에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삶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후쿠이 테쓰야 2002), 레츠 시스템은 국가 권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사회보장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래로부터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그리하여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율성과 자립성을 길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쿠이 테쓰야(2002)가 "공예 및 생활기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대항 공예가'라 표현하면서 공예 및 생활기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은 자본주의 안에서부터 자본제 밖으로 나가기 위한 '초출적 투쟁'이라고 정의한 것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연대성

철학자 엘런 와트는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간에 가치를 교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측량단위가 없기 때문에 집을 짓지 못한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말했다(박용남 2001). 그런데 레츠(LETS)는 저소득층의 사람들조차 돈이 없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레츠가 아니었더라면 접근할 수 없었던 물건과 서비스를 레츠를 통하여 어떻게 얻을 수 있었던가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감탄적으로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예컨대 세이팡/윌리암스(1998)는 레츠에 관한 글에서 "영국 칼더데일에서 어느 실업상태의 여성은 지난해에 실제로 피부로 느낄 만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레츠를 통하여 옷을 사입고, 자작도구를 빌려 썼고, 난로를 수리하고, 집에 페인트칠을 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실업상태의 남자는 레츠를 통하여 전기일과 건설일을 할 수 있었다. 두 경우에 모두 그들은 그러한 서비스에 필요한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였다"고 증명하고 있다. 그 외에 레츠 시스템에서는 그 회원들끼리 공동의 텃밭을 가꾸기도 하면서 상호 관계하는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전체 공동체 속에서 뭔가 쓸모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며 마침내 자아존중감이 발전한다. 이것이 또다시 다른 존재를 주의 깊게 배려하는 연대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결국 학력이나 재산, 명성, 돈벌이에 도움되는 노동력 따위의 세속적 기준, 즉 경쟁력과 약육강식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생존 전략은 여기서 더 이상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상호 도움 주기와 상호 필요성의 충족이라는 연대성의 가치가 이 공동체와 개인을 동시에 존속시키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전 루벵대학 교수인 베르나르 리에테르(2002) '공동체 화폐'라는 글에서 호혜적인 선물 교환이 모든 공동체의 기초임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즉 사람들이 단순히 가까이 산다거나 같은 혈연관계이거나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다고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이 얼마나 대가 없이 선물을 교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공동체 형성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조차 '서로(cum) 주는 것(munus)'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남김의 경제가 아니라 선물의 경제, 바로 이것이 레츠가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동체가 붕괴된 오늘날 호혜적인 교류와 거래를 가능케 하는 레츠 시스템은 공동체와 연대성을 부활시켜낼 수 있는 중요한 매개고리가 된다.

평화성

레츠는 상호간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기 이익만의 추구로부터 발생되는 갈등과 전쟁은 있을 수가 없다. 자기 이익 추구와 세속적 부에 대한 집착(중독)은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와 경쟁관계를 불러일으키지만 상호 이익 추구와 그를 통한 새로운 풍부함의 체험은 신뢰관계와 협동관계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인간은 원래 게으르고 이기적이며 소극적인데다가 참을성도 없기 때문에 과연 그러한 이상적인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맞다. 인간에게는 그러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 반대로 부지런하고 이타적이며 적극적이고 인내하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문제는 사회적 관계인 것이다. 과연 어떠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가에 따라 이 복합적인 인간의 내재적 특성들 중에서 유별나게 더 많이 현실화되는가가 결정될 것이라 본다. 요컨대 착취와 억압, 경쟁과 지배의 사회 관계가 팽배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 전략으로 이기적이며 약육강식형으로 살아가고자 할 것이다. 여기서는 개인간에도 치열한 경쟁과 증오가 팽배해질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약탈과 전쟁이 일상화한다. 현재 지구촌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신뢰와 배려, 소통과 협동의 사회 관계가 풍성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발전과 공동체의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레츠라는 새로운 시스템도 사실은 그러한 대안적 사회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중의 일부분이며 그 참여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관계를 형성하고 더 풍성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됨에 따라 더욱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현재의 경쟁 시스템은 '너 죽고 나 살자'라는 게임인 데 비해, 레츠는 상호성을 전제로 하여 '너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생태성

레츠는 세계적 거래보다는 지역적 거래를 촉진하고 장려하기에 자원과 에너지의 절약을 가져온다. 앞서 박용남씨의 사례에서도 분명해진 것처럼 요구르트 하나조차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여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무의식적 소비 과정을 통해 그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시간,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고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결국 레츠라는 지역중심적인 분권화된 거래 관계망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분리된 관계들을 극복하고 비로소 모두가 하나의 순환 고리 속으로 통합되는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게 된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실직한 사람들, 병들거나 늙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의미를 한 단계 넘어선다. 왜냐하면 가난하고 실직한 사람들이 자칫 '피해의식'에 젖어 나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생태파괴적인 성장과 개발 전략에 무비판적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후진국과 선진국이 세계시장(world market)을 둘러싸고 무역 분쟁을 할 때, 선진국이 "(주로 후진국에서) 환경파괴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을 국제적으로 유통시키지 못하게 막자"는 제안을 하면 후진국들은 대개 "너희들은 과거에 그렇게 했으면서도 이제 우리가 좀 잘 살려고 하니 못하게 막느냐!"는 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물론 선진 강대국이 후진국의 추격을 물리치려는 새로운 경쟁 전략에서 그런 구상이 나온 측면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후진국도 선진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야 옳은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서는 바로 이것이 후진국이 가진 피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올바른 해결 방법은 선진국이 먼저 나서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후진국에게 그렇게 갈 수 있도록 경제적, 기술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케 되려면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모든 풀뿌리가 강력히 나서야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레츠를 통한 분권화된 생산과 유통의 장려는 과거의 선진국과 후진국의 서열 관계를 넘어가면서도 생태적으로 건강한 사회경제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된다.


4. 레츠의 한계와 논쟁점

한편, 레츠는 원래의 이념대로 실천되기에는 많은 장애물을 안고 있다. 나아가 설사 레츠가 제대로 작동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기존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아래서는 그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자.

규모

세이팡과 윌리암스(1998)에 따르면 "많은 레츠회원들이 (종종 유기농법으로 키운)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려는 열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츠를 통하여 교환·거래되는 식품의 규모는 미미하다."고 한다. 신선한 식품을 적고 불규칙한 양으로 거래해야 하는 불편은, 특히 중심적인 회합장소가 없는 경우에, 사는 사람에게나 파는 사람에게나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여러 실험들에서도 이 문제는 그대로 발견된다. 미내사나 한밭레츠의 운영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예컨대 박용남(2001)씨는 "여전히 '벌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기존 화폐제도의 오랜 관습에 많은 회원들이 길들여져 있어 먼저 거래에 나서겠다는 생각 대신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만 기다리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결국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자연히 타인의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공을 가로막게 된다. 게다가 낯선 사람과 접촉해 협상해야 한다는 어색함, 선뜻 그 가치를 판단하기 힘든 물품이나 용역 앞에서 멈칫거리는 일 등이 거래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크게 자기조직화 과정과 생동하는 연대 과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경우,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레츠 조직이 가령 같은 뜻을 가진 유기농 조직들과 연계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세이팡과 윌리암스 1998). 즉 생산자-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다. 만일 지역 유기농들이 광범위한 규모로 지역통화를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유기농운동과 레츠운동을 공생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서비스나 물품들도, 일정한 주기로 일정한 장소에서 회원들이 '잔치 겸 장터'를 열어 서로 마음을 여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

또하나의 문제는 ― 특히 영국에서 ― 레츠에 대하여 중앙정부가 취하는 불분명하고 모순적인 태도이다(세이팡과 윌리암스 1998). 영국에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예컨대 실업자들-은 레츠를 통해서 얻는 소득 때문에 사회보장 수혜대상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레츠에의 참여에 소극적일 수 있다. 만일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레츠를 측면 지원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앞에서 정부 기관이 주도권을 갖고 나서는 경우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율성을 훼손시킬 우려마저 있다. 즉 정부 기관이 주도하는 경우 그렇지 않아도 깊이 진행된, 하버마스식의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박용남 2001). 그러나 만일 정부 기관이 자신의 역할을 '측면 지원'에 국한시켜 세금 면이나 각종 제도적 측면에서 레츠 운영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적극 도와준다면 훨씬 활성화될 것이다. 예컨대 뉴질랜드와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부는 레츠에 대해 좀 더 협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레츠가 실업자들과 저소득자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공인하였다. 1995년 호주의 사회보장법령은 레츠에 관련하여 얻은 소득을 사회보장 수혜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정하였고, 사회보장 담당관들은 지금 오히려 실업자들에게 레츠에 가입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되면 지금에 비해 실업자들이 훨씬 생산적인 일에 참여하여, 국가에 계속 의존하기보다 자신들의 상황을 스스로 개선하도록 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범위

한밭레츠를 주도한 박용남(2001)씨가 강조하듯이 지역통화의 생물지역주의적 특성, 즉 생산물과 화폐가 일정한 지역적 범위 안에서만 순환되도록 하여 지역적 건강성과 자립성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거래 범위의 확대로 말미암아 훼손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박용남(2001)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송파품앗이'와 '기술도구은행' 그리고 '한밭레츠' 등만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지역통화 시스템이고, 반면에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FM시스템'이나, 녹색연합의 '작아장터', 불교환경교육원의 '두레' 등은 지역통화운동을 통해 지역을 살리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전국적 거래를 도모하려 하기에 엄격히 지역통화 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후자의 경우는 사람들의 이동 거리나 물품의 이동 및 수송 거리와 시간,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야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NAM 운동을 주창한 가라카니 코진(2002)은 범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여 시민화폐를 유통함으로써 범위를 넓힐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풀뿌리가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 위에 주체적, 객관적 조건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그 범위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등, 자율적인 조절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립

레츠의 근본 이념에도 자립성의 고양이라는 것이 있지만, 레츠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자립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국내의 경험을 보더라도 레츠 시스템의 관리자가 대개는 다른 단체의 주된 업무를 겸임하고 있어 레츠에 대한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박용남 2001). 사실 이것은 레츠의 초기에 그 전임 운영자가 경제적 자립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그래서 전임운영자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다 보니 마침내 거래실적이나 회원들의 결합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임자들이 외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송파품앗이'는 구청으로부터, '기술도구은행'은 한 기업의 복지기금으로부터 관리자의 인건비와 시스템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경비를 보장받고 있다(박용남 2001). 그런데 이런 외적 지원이 과도기적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된다면 레츠 운동의 원래 취지를 많이 퇴색시킬 위험도 있다. 결국, 초기의 미약한 자립성을 점차 키워내면서 마침내 완전한 자립의 틀을 구축해내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잉여

앞에 제기된 문제들은 레츠 시스템이 그 자체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은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하더라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잉여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잉여가치 형태로 만들어내고 이 부분을 기업가와 은행가, 지주, 국가 등이 가져간다. 그런데 이 문제가 레츠에서는 어떻게 될까? 레츠에서는 생산자가 공급자이고 판매자이며 수익자이기 때문에 사실은 스스로가 자신의 잉여를 생산하여 거래 상대방에게 선물처럼 주면서 또한 상대방의 잉여를 선물 받게 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레츠에서는 모든 물품과 서비스에 고정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형편을 보아가면서 흥정이 가능한 구조이기에 일종의 합의 가격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합의된 잉여' 시스템 자체가 지닐 수 있는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이것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잉여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 마침내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오히려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본주의 잉여 시스템이 갖는 결함들(약한 고리들)을 '자발적으로' 메워줌으로써 자본주의 잉여 체제가 더욱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 올까봐 두렵기도 하다.

소외

레츠는 그 출발점이 생산 영역이라기보다는 유통 영역이다. 생산자로서의 노동자 운동이라기보다는 소비자로서의 노동자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잘못된 생산관계를 혁파하려면 생산의 지점에서 시작하고 거기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본의 지배는 생산과정을 넘어 유통 및 소비과정에까지, 심지어는 우리의 의식과정은 물론 감성과정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파고 들어가고 있음을 냉철히 보아야 한다. 따라서 생산의 지점을 놓쳐서도 안 되겠지만 생산의 지점에 갇혀버려서도 안 된다. 그런 뜻에서 레츠 운동은 자본에 의한 '생활 세계의 식민화'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운동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있다. 즉 유통 관계의 혁신이 그 얼마나 생산 관계 혁신을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레츠 시스템 안에서 물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당사자는 건강한 선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강한 생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레츠 안에서의 건강한 생산과 소비가 레츠 밖의 반생명적 생산과 소비를 모두 치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생산과정이 지닌 근본 문제들, 즉 위계, 기술, 소외, 소유, 감시, 숙련 등의 문제가 과연 레츠를 통한 유통의 건강성 회복만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지양

그래서 마지막으로 논의해야 하는 것은 과연 레츠가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양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것에 대한 해답은 미결정적이라 본다. 즉 레츠는 보완으로 갈 수도 있고 대체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역시 레츠 자체만으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혁파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들을 적극적으로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 관계를 세우려는 사회적 노력이 힘차게 병행될 때 레츠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지양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레츠는 자본주의의 결함(대량 실업자의 생산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시, 생태적 파괴성 등)을 메꾸어주는 기능적 역할밖에 못할 것이라 본다.


5. 맺는 말

레츠는 여러 가지 난관이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잠재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 경험 사례들을 보다 차분하게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의 독재와 권력의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실험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공유하며 스스로 참여하면서 발전시켜나가는 노력을 한다.

둘째, 다양한 실험들 사이에 정기적인 워크샵이나 공동 사업을 통해 유기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간다. 그 속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학습하여 사업을 더욱 진전시킨다.

셋째, 식의주 등 기본적인 생활에서는 물론, 육아 및 교육, 의료와 보건, 문화와 종교 등 각 영역에서도 지역화폐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의식적 조직화 사업을 전개한다.

넷째, 기존의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명운동 등과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면서 기존 시스템의 모순 구조를 함께 타파함과 동시에 지역화폐 시스템이 보다 널리 확대되도록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간다.

결론적으로, 시장과 권력의 독재에서 유래하는, 기존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새로운 삶의 구조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아래로부터' 줄기차게 일어나는 것, 이것 외는 우리와 후손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다 줄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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