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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규석]우리 역사속에 나타난 공동체의 현재적 의미
     
회오리 조회수 3,906   등록일자 2004-07-22 10:09:06
두레/천규석 |

우리 역사속에 나타난 공동체의 현재적 의미





전통 두레의 기원과 사회적 배경



두레의 원천도 오늘에 전승된 모든 우리전통문화의 유산과 같이 삼한시대의 하늘굿(祭天義式)에서 찾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각기 딴살림을 차릴 모든 문화라는 것들이 한데 뒤섞인 하늘굿에서 두레가 두레 고유의 특징적 모습을 드러낸 때를 통일신라기로 잡는 데도 이론이 없다. 통일신라기 이후의 향도(鄕徒)와 저 한가위를 탄생시킨 6부 아낙들의 두레길쌈겨루기가 그것이라고 한다.



통일신라기는 배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까지는 아직 멀었으나 이제까지의 씨족 또는 부족 단위 공동생산이 해체되고 토지 점유와 생산이 개별 가족단위화된 일대 전환기다.



이같은 공동생산양식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농작업의 본질적 공동성의 필요에 따라 가족별 생산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써 이 공동 농사일 조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두레는 처음부터 모순이다. 소유개별화의 지향 속에서도 영농공동화의 지향도 함께 담아 두 가지를 조화로 아울러야 하는 모순에서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전통두레의 재구성을 탐색해 보는 것도, 두레 발생 당시의 그 모순이 해소되었다기보다 갈수록 오히려 첨예화되는 데 있다.



이런 원시적 두레는 논농사의 확산과 더불어 논농사 집중지역인 남한 지역 곳에서 정착되기 시작했고, 특히 전래의 직파 대신 모를 길러 논에 옮겨 심는 이조 후기(14세기)에 가서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는 두레다운 두레가 제모습을 갖춘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두레는 이앙에 따른 벼농사의 산물이다. 벼농사는 음력 5월부터 10월까지의 고온다습한 여섯 달 동안의 비교적 단기간에 단위면적당 다른 작물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명열량을 생산해주지만, 그만큼 집중과 강도가 높은 노동도 요구한다. 더구나 벼논물을 거의 천수(天水)에 의존했던 전통사회에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와 5월을 넘길 수 없는 영농시한에 맞추어 신속하게 모를 내지 않으면 일년 농사 망치는 이앙법은 이 일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의 조직화가 절실한 과제일 수밖에 없게 했다.



게다가 모내기 뒤 보름 전후에서부터 열흘쯤의 간격으로 세 번쯤 거듭하는 논매기는 바로 삼복더위와 거의 같은 기간에 논바닥에 엎드려 기며 풀을 매야 하는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다. 삼복염천 아래서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지열과 복사열로 펄펄 끓다시피 하는 무논 가운데서 줄줄이 타 내리는 땀으로 멱감은 등 뒤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대는 쇠파리와 등파리를 진흙탕 속의 부자유스런 손발로 일방 내쫓으며, 자칫 실수하면 눈동자와 피부를 상하게 하는 거칠고 뾰족한 벼포기를 한아름 안고 논바닥을 온통 뒤집어 풀을 매야 하는 농부의 꼴을 상상해 보라.



불같이 더운 날에
뫼같이 짓은 논(밭)을
어-히- 혼자 우째 맨단 말고-
님은 가고 봄은 오니
꽃만 피어도 님의 생각
앞산 위 사래긴 밭을
뉘와 함께 맬 것인고-
토시짝도 짝이 있고
미신짝도 짝 있는데
에-이- 헌 칭이 같은 내 팔자야



이미 돌아가신 이웃 어른들이나 내 선고께서 다른 일꾼 없이 혼자 논밭을 맬 때 곧잘 토하듯 부르시던 농요의 일부다. 이 일을 어찌 한(恨) 없이 신명(神明) 없이 혼자서 단순한 일로써 계속할 수 있겠는가? 노동의 효율성은 노동의 단순한 조직화만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노래와 춤과 풍물로 한을 풀고 신명을 올려야 효율성도 오른다. 풍물은 물론 두레의 신명을 위한 산물이겠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두레조직 자체를 풍물로 부를 만큼 두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룬다. 특히 학자들이 연회농악이라 부르는 두레의 놀이풍물은 모든 우리 전통 예술과 문화의 원천을 이룰 만큼 내용은 다양하고 규모도 장대하다. 이래서 풍물은 고된 일의 두레를 신명나는 놀이로 만드는 두레굿(문화)을 만든다.


두레의 조직과 두레일



두레조직은 통치권의 행정조직과는 별개로 일차적으로는 자생마을 단위의 생산조직이다. 마을 공동체 시절에는 마을마다 있었던 두레답과 동답으로 불리는 공유답은 의무적인 두레 공동경작으로 마을 재정의 기본으로 삼았다. 두레구성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소·중농 경작지는 상호부조적으로 공동경작한다. 본인 대신 머슴만 두레에 참여시키는 지주의 넓은 사유지의 경작은 두레노동의 반대급부로 두레 유사의 계산에 따라 현물 또는 현금으로 지불 받아 경작지가 없거나 적은 두레구성원에게 분배해주고 나머지는 두레 재정에 보탰다. 두레에 일꾼을 보낼 수 없는 과부나 노약자의 경지는 공공부조적으로 무상경작해주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경우에 따라서 특히 화폐경제가 농촌에 침투한 말기 두레에서는 가벼운 반대급부를 두레에서 요구했다.



두레조직은 항구적이었으나 마을 대동굿 기간이 끝나고 농번기가 다가오는 정월 보름에서 2월 중에 16세부터 55세까지의 신입회원을 받는 신참의식, 조직역원 선출, 마을 대소사 논의, 각자의 호미를 두레청에 걸며 공동작업 의지를 결속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두레총회로써 조직을 재가동시켰다. 이 의식을 지역에 따라서는 호미모둠 또는 동회라고 불렀다. 본격적인 농번기인 모내기나 김맬 때는 두레 구성원 모두가 작업장 책임자인 숫총각이 든 농기를 앞세우고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이른바 기본적인 노작풍물만 치며 일터에 나간다. 일터 도착 뒤에는 농기는 전답가에 모셔 세워두고, 풍물은 사설과 목소리 좋은 두레꾼 한두 사람만 잡는 북 또는 장구 외에 나머지는 역시 전답가에 그냥 둔 채 두레 우두머리인 영좌까지 전원이 작업에 참가한다. 내가 어릴 때 본 두레작업 광경은 선소리꾼이 갖은 사설로 앞소리를 매기면, 엎드려 일하는 모든 두레꾼은 주로 '쾌지나칭칭나네'로 일제히 화답했고, 이따금 교대로 일어나 잠시 덩실덩실 춤을 추다 다시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일하다 허리가 몹시 아프면 이런 식으로 교대로 일어서서 신명의 휴식을 취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몇 개의 논배미를 순식간에 휩쓸고 넘어서면 아침밥이 나오고 또 얼마 뒤에는 새참과 농주가 나오고 걸판진 점심이 나온다. 점심 뒤에는 각자가 나무그늘을 찾아 배꼽을 까놓고 보통 오후 4시경까지 자는 낮잠으로 포식한 점심을 삭히고 한낮 더위를 식혔다. 일하는 시간이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라지만 네 차례의 참시간과 낮잠시간을 빼면, 노동법과 시계가 없던 그 시대였는데도 자율적인 두레관행에 따라 8시간을 넘기지 않았던 것같다. 저녁에 마을로 돌아올 때도 나갈 때와 같은 행장으로 돌아왔다.


두레의 자치성과 문화적 탁월성



이런 식의 두레일이 끝날 때마다 농청에 모아 걸어두었던 호미를 깨끗이 닦아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는 두레 해단식을 치른다. 이 의식을 지역에 따라서는 호미씻이 또는 백중놀이라 부른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학자들의 말이지 두레꾼 자신의 말은 아닌 것 같다.



필자의 고향인 경남 영산 지역의 논바닥 흙은 자갈 섞인 모래땅이 아니고 물 속에서는 비교적 물렁물렁해지는 찰진흙땅이라서 그랬는지 모르나, 논맬 때는 손톱이 닳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대나무마디나 양철로 잘라 만든 고딩이(골무)를 손가락 끝에 낀 채 맨손으로 매고 호미를 안 쓴 탓인지 호미모둠이나 호미씻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다만 "꽹이 말 탄다. 꼼지 먹는다"는 말만 들었다.



2월 중에 한다는 호미모둠도 우리 지역에서는 정월 중순쯤 서낭대를 앞세운 두레꾼들이 집집을 도는 지신을 밟은 뒤 두레일을 앞두고 호미를 모으는 대신 동사마당에서 하루종일 때로는 2, 3일씩도 계속하는 마을동회만 내게 보여주었다.



두레일이 끝나는 7월에는 정자나무 아래서 마을의 힘깨나 쓰는 집에서 베푸는 향연과 함께 두레꾼의 우두머리인지, 수총각인지, 아니면 그 해 농사장원인지 모르지만, 덩치 건장한 두레꾼 중 한 사람이 삿갓을 뒤집어 쓴 채 황소를 타고 작업 때와 노작풍물보다 기물이 훨씬 많은 놀이 풍물과 두레꾼들에 에워싸여 마을과 들길을 행진하며 신명을 푼다. 그러나 세벌논매기를 끝내면서 7월 백중무렵에 하는 중노동해방절 놀이도 거의 50년 전에 내가 보고 듣기로는 호미씻이나 백중놀이라 하지 않고 '꽹이말 탄다'고 한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두레는 기본적으로는 3인이 개별로 따로 일하면 3일 몫인 농사일을 세 사람이 두레로 하면 이틀에 마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인 공동노동조직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두레의 기능이 이에 한정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을 자치제시대의 그것은 마을 자치의 의회기구였고, 동시에 집행조직이었다. 또 그것은 마을공동체의 흐트러지는 기율을 바로세우는 엄정하고도 민주적인 사법기구요, 공동체 삶에 필요한 모든 지혜와 덕목을 전인격적으로 전수하는 교육현장이기도 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고달프고 소외되기 쉬운 노동을 신명나는 놀이로 통일 해방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탁월한 문화예술 조직이라는 데 있다.



물론 의사결정 과정이 직접 민주성이나 경영적 협동성 등의 지역자치공동체적 측면에서는 두레와 유사하거나 더 뛰어난 조직이 다른 나라 역사에서도 더러 발견될 수 있다. 안승준도 아테네의 '이클리지아', 미국 뉴잉글랜드의 '마을회의'를 두레와 유사한 자치조직으로 보았다. 그리고 또 1550년 제정 러시아의 이반 대제때 농촌의 자치조직으로 급속히 확산되다가 뒤따른 탄압으로 움츠러들고 다시 1860년 알렉산드르 2세의 지방정부개혁 때 잠시 부활했다가 1917년 또다시 볼셰비키혁명으로 해체 잠복했던 '젬스트보'도 이와 비슷하다. 지나친 권력집중, 소유의 획일화, 관료체제의 부패로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지금 다시 '젬스트보'는 농민협의회, 교사대회 등 부문운동을 통해 전국적인 자치조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다른 지역의 농민 자치 조직들도 쌀농사 중심의 노동집약성과 강도를 놀이로써 통일해방했던 우리 두레의 문화적 탁월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두레의 소멸



그러나 이런 두레는 이제 완전하게 흔적을 감췄다. 마을 전체의 의무적인 두레뿐만 아니라 필요를 느끼는 집들끼리 손을 모아 함께 일하던 '품앗이'도, 심지어 정해진 일이나 기간 동안의 도급노동인 '고지' 또는 '꼬지'조차도 농촌에서는 사라졌다.



두레쇠퇴의 일차적 원인은 일제의 조선 지배의 기초사업인 동양척식회사의 토지조사와 경계확정, 그에 따른 소유권의 제도화로 인한 소유권과 이용권의 배타적 독점화, 화폐경제의 농촌지배로 지금까지 협동공동체적이었던 두레노동의 개별 임금노동화, 민족정체성과 마을 공동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일제의 식민문화정책 등 때문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어떤 이는 주로 본인 신고에 의존했던 동척의 소유권 법제화 때 마을 공유답이 동척 자신이나 그에 빌붙은 눈 밝고 힘 있는 지주에 의해 사유화된 것을 두레 쇠퇴의 원인으로 친다.



내가 듣고 보아 알기로도 어떤 소지주는 동척기수의 보조를 하면서 당시까지 도처에 널려 있던 무주공산과 힘 없어 까막눈이었던 농민의 경작지들을 법의 이름으로 빼앗아 사유화하여 대지주가 되고서, 독립만세운동에 나선 동족의 피로 얼룩진 1919년 그해에 자기는 고대광실의 왕대들보를 상량해두었다. 물려받은 그 후손 또한 눈 밝아서 해방 조국의 중앙정치 무대까지의 진출을 아직도 노리고 있다던가?



그러나 마을두레답과 두레는 일제 때 다 없어진 것은 아니고 다만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된 듯하다. 내 고향마을에도 이미 두레굿은 없어져도 내가 귀향했던 1965년 이후까지 700평 규모의 두레동답은 남아 있었다.



마침 이 땅이 내 집 뒤에 바로 붙어 있어 내가 경작을 희망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것이 당시 마을 이장의 동생에게 불하되어 사유지로 되어 있었다. 이 무렵이 마을 당산이 헐리고, 당산목이 도시가구의 무늬목으로 잘려나가고,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었던 이른바 새마을운동이 농촌을 휩쓸 때다. 일제와 6·25를 겪으면서 형해(形骸)로나마 남아 있던 농촌 공동체성과 두레가 아예 자취를 감춘 때는 바로 이 새마을운동 때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근대화, 공업화로 얻은 비료와 농약, 농기계 등이 농촌과 농업을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다. 두엄 대신 돈 주고 비료 사고, 농약이 논매기보다 논풀, 밭풀을 더 말끔히 죽여주고 농기계가 땅갈고, 모심고, 가을걷이까지 끝내주는데 무슨 두레가 필요한가? 화학물질과 기계가 농업, 농촌을 지배하는 농업생산양식으로는그것이 아무리 큰 규모의 상업농으로 아무리 많은 일손을 모을 필요가 있다 해도 전통 두레를 소생시킬 수 없다.


새 두레의 당위성



전통두레를 촉발했던 직접적 원인인 농민 노동의 강도가 농약과 기계로 낮아졌다지만 그렇다고 비료, 농약, 기계, 비닐, 골재 등의 공업자본의 전면적 농촌지배와 농업의 시장 예속을 누가 농민 농촌의 해방이라고 말할 것인가? 화학물질로 온 농토가 초토가 되고, 인간의 생존 터전인 농촌 자체를 파괴하는 획일적 공업화와 도시화가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그래서 관행농법으로부터 벗어나 유기농 그리고 다시 공생농에로의 농업양식을 변화려는 운동이 지금 세계적인 규모에서 시도되고 있고, 토지와 노동과 신용의 지역화를 통한 지역자립경제론이란 논리도 나오고, 일방적 공업화로 토지파괴와 인간분열만 일삼는 국가권력 대신 지역자치 공동체론과 그 실험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바람직한 시도들도 그것을 구체화할 주체와 거점이 분명해야 한다. 그것 없는 모든 지역자치 공동체론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뜬구름 잡는 공염불이다.



진정한 지역자치는 언제나 잘난 지역기득권자들에게 세습적으로 또는 이따금 얼굴을 바꿔가며 몰표나 몰아주는 제도적 선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 스스로도 자기의 보잘 것 없는 기득권 대신 자발적 헌신과 청빈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다시 재조직하는 끝없는 지역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를 위한 선례적이고 가장 모범적인 주체와 거점이 전통 두레의 재도입뿐이라는 필자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회주의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중앙권력이 공동화된 지금의 러시아에서는 제정 러시아 때의 지역자치 조직인 '젬스트보'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지역분할로 중앙권력이 지금 방향을 잃어버린 이 기회에, 무슨 백마탄 초인이나 대망하는 대권향배에 목매달며 하염없이 서울이나 바라보고, 다시 권력집중의 몰표나 찍고 금방 또 실망할 것이 아니라, 각자 난 데로 되돌아가서 진정한 자치의 씨앗이라도 뿌리자. 명색이 한 나라 국회의원이라면서 조작된 지역주의 감정의 누적에 불과한 카리스마적 허상이 특정지역에서 손만 잡아 번쩍 들어주면 다 되는, 간도 쓸개도 없는 유치한 놀음은 이제 그만하고, 진정 제 고향을 사랑한다면 돌아가 이웃농민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내심으로는 파괴적인 권력독점을 음모하는 반개혁 세력들이 개혁을 바다 건너가게 해놓고도, 개혁후퇴를 질타하며 제가 개혁하겠다고 제게 표를 몰아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돌아가서 지역자치의 씨앗 하나 뿌리기는커녕, 지금의 기득권도 모자라 중앙권력까지 움켜지려면서 개혁은 무슨 개혁을 한다는 것인가?



개혁과 창조라 해도 이미 있는 자연과 무엇인가 있었던 선례로부터의 개혁이고 창조다. 인간에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능력은커녕 '창조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파괴하는 능력밖에 없다. 진정한 창조와 개혁은 이미 주어진 자연에 내재하는 정교하고도 신묘한 생명의 질서를 찾고 이의 파괴행위를 최소화하는 도덕력의 개혁과 창조다.



따라서 그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있어도 바람직한 측면이 있는 과거의 것을 생명의 논리와 윤리에 따라 오늘에 되살리는 행위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도 바람직한 개혁과 창조행위인 것이다.



기간산업의 공업화, 농업의 화학기계화와 상품화, 모든 농촌의 도시 변두리화, 두레농지의 사유지화 등으로 전통두레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부활을 위해서는 위의 조건들은 하나하나 제거시켜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진정한 농촌이 없고 도시 변두리만 있다면 그 두레의 부활도 농촌두레 대신 도농두레를 통해 부활할 수밖에 없다. 그 부활의 단계도 전통두레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사라져간 두레농지를 가장 앞서 복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두레노동, 두레경영, 두레문화 등으로 하나하나 재도입하고 재창조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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