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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있는 지역화폐 한밭레츠
     
한밭레츠 조회수 1,064   등록일자 2014-07-30 23:51:48

사회투자지원재단이 만들어 가는 사회적경제 인프라

희망 인프라               2014.  03.  13

[ LETS 기획취재 ] 2회 얼굴있는 지역화폐 한밭레츠



우리나라에 지역화폐 레츠를 처음 소개한 곳은 생태주의 격월간지 녹색평론이다. 녹색평론이 국내 최초로 레츠를 다룬 것은 1996년이다. 이후 1998년 3월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미래화페란 이름으로 레츠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후 미래여성클럽, 불교환경교육원, 송파구 자원봉사센터, 과천 품앗이, 구미사랑고리, 인천연대, 광주 나누리, 관악 나무, 충북 보은 등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레츠를 도입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곳은 별로 많지 않다. 지금부터 소개할 대전 한밭레츠는 국내 최대 레츠이자 전세계적인 성공사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웃 간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한 물물교환은 이제 치과와 한의원을 세우고 대전 원도심의 문화운동까지 손을 뻗을 정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레츠가 바꾼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연합기획취재단: 옥천신문, 용인시민신문, 남해시대신문, 태안신문, 해남신문, 사회투자지원재단>

 

 

◆현금 없으면 붕어빵 하나도 못사는 세상

현재 화폐경제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돈을 가진 사람만이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인성이 뛰어나거나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 해도 현금이 없으면 시장에서 붕어빵 하나도 사기 어렵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오고 나중에 갚는 일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금이든 신용카드든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

반면, 지역화폐 '레츠'는 돈이 없어도 사람들은 다른 그 무엇으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밭레츠 회원인 박현숙씨는 한밭레츠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카드 대금이 절반 이하로 줄어 들었다고 한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쇼핑에 들었던 비용과 여가생활을 위해 써야했던 비용 등이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현금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박현숙씨는 필요한 것을 시장이나 마트, 홈쇼핑에서 사지 않고 한밭레츠를 통해 구하는 길을 택했다.

한밭레츠는 지난 2000년 대전에서 문을 연 지역화폐다. '두루'라고 하는 가상의 지역화폐를 쓰고 있는데 2012년을 기준으로 가입한 회원은 약 600명. 이들이 2012년 한해 두루로 거래한 건수는 1만5천899건이다. 거래 규모는 3억4천600 두루. 1천 두루는 1천원의 가치에 해당한다. 600명의 사람들이 현금 대신 두루라고 하는 이상한 지역화폐로 3억4천600만원어치 물건이나 서비스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물건을 사고 받는 게 아니라 관계를 주고 받았다고 말한다.

◆레츠의 시작과 끝, 더하기와 빼기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한밭레츠에 대해 알아보자. 한밭레츠는 외환위기의 후폭풍이 채 가시지 않은 1999년 대전의제21 추진협의회에서 시작됐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는 국민들의 삶과 일터를 지켜주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도 쉽게 깨졌다. 굵직한 대기업들이 무너졌고 국가도 국민들에게 금 모으기 운동을 해 달라고 손을 벌리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기존의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립적인 삶을 도모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한밭레츠다. 돈이 아닌 방식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주고 받는 관계. 

  

한밭레츠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회원들 누구나 '0'의 계정에서 거래를 시작한다. 필요한 것이 있거나 줄 것이 있다면 한밭레츠 홈페이지에 올리면 된다. '거래하고 싶어요'와 '거래했어요' 두 개의 게시판만 있으면 레츠는 완성된다. 거래를 원하는 당사자들끼리 흥정을 한 뒤 두루로 값을 치르면 된다. 가상 화폐인 두루만으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여기에 실제 화폐가 더해지기도 한다.

최근 '거래하고 싶어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살펴보니 접이식 자전거(현금 10만원+5만 두루), 핸드페인트 뚝배기(3천 두루), 국산 모짜렐라 치즈 500 그램(1만원+3천 두루), 방수 앞치마(1천 두루), 어른을 위한 영어 동화반(2만원+5천 두루) 등 다양했다. 사람들의 필요가 다양하니 주고받는 것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한밭레츠에서 거래되는 분야는 농산물, 의료, 가맹점(각종 자영업 등), 재활용, 공정무역, 음식, 교육, 생활용품, 품앗이(서로 일을 도와주는 것), 대여, 후원, 자원활동 등 다양하다.

거래가 이뤄지면 수입이 생긴 쪽에서 '거래 했어요' 게시판에 간단한 거래 내역과 금액을 등록한다. 이걸로 거래는 끝이다. 위에 나열된 뚝배기를 예로 든다면 뚝배기를 팔아서 3천 두루의 수입이 생긴 사람이 '거래 했어요' 게시판에 더하기(+) 3천 두루를 입력하면 되는 것이다. 뚝배기를 사간 사람의 계정은 빼기(-) 3천 두루가 된다. 이 더하기와 빼기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레츠의 거래에서는 모든 거래가 더하기와 빼기로 이뤄지면서 언제나 전체 계정은 '0'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두루 거래에서는 일방적인 이윤이나 착취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의 시작은 만남에서


한밭레츠의 시작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한밭레츠 창립 멤버로 현재 대외협력실장을 맡고 있는 김성훈씨의 말을 들어보자.

"1999년부터 준비를 해서 2000년도 창립을 했는데 그때 회원이 한 70명 정도 됐습니다. 창립을 하고 딱 거래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고요. 오랫 동안 화폐경제 시스템에 길들여진 회원들이 '벌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생각을 못 버린 거에요. 다시 말해서 먼저 거래에 나서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린 거죠. 그렇게 해야 자기 계정에 두루가 쌓이고 나중에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이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풀이 됐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실무자들이 짜낸 묘안은 포트락 만찬이었다. 회원들 각자가 음식을 싸들고 와서 서로 얼굴을 트면 거래가 좀 이뤄지지 않을까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첫해 287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이 사실은 레츠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레츠는 단순히 서로의 필요나 욕구를 주고받는 거래적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간에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서로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가 깊어진다는 말이다.

한밭레츠 초창기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김성훈씨의 말을 들어보자.


"초기에 두루로 거래할 수 있는 가맹점을 확보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주변에 가입 권유를 해도 잘 들어오지를 않아요. 한밭레츠가 있던 건물 밑에 미용실이 하나 있었는데 찾아가서 레츠를 설명하고 가입을 권유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우리 회원들이 많이 이용할 거다 설득을 했지만 사장님 말씀이 '내가 두루로 쓸 수 있는 게 없다' 면서 거절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장님이 가입하셔야 옆에 있는 세탁소도 가입하고 식당도 가입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랬죠. 이런 것이 바로 사회적 신뢰가 없는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죠. 사회 신용이 건강해야 레츠도 가능한 겁니다. 미용실 사장님은 불신을 전제로 시장경제 시스템으로만 생각하니 레츠 가입을 안 한 것이고요. 두루 많이 해봐야 나만 할인해주는 꼴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지요."

 

◆지역화폐를 넘어 건강화폐까지 확장

이후 15년을 지내오며 한밭레츠의 성장은 눈부시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민들레의료생협의 탄생이다. 한밭레츠 회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들레의료생협에서는 진료비를 두루로 받는다. 이는 한밭레츠 설립 초기 함께 한 어느 한의사가 레츠 거래 활성화를 위해 본인의 한의원에서 두루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에 레츠를 만났고 일방적인 시혜나 기부가 아닌 방식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진료시 본인부담금 전액과 비보험 진료비 중 50%를 두루로 받기로 했다.

현재 민들레의료생협은 일반 의원, 치과, 한의원으로 커졌다. 진료과목도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 신경정신과, 방사선과, 명상치유 등 다양하다. 민들레의료생협에 직접 종사하는 실무진만 40명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레츠가 그저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소소한 자기 만족에 그치는 취미 활동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민들레의료생협은 지역화페 두루와는 또다른 건강화폐 '조각'을 사용하기도 한다. 건강화폐 개념은 스테판 브룬후버(stepan brunnhuber)라는 독일의 정신과의사가 만들었다. 의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 예방이다. 브룬후버는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교육이나 운동,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소홀한 것은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금연이나 체중 감량에 성공한 주민들에게 건강화폐를 주고 이를 의료보험회사에 내면 그만큼 보험료를 줄이는 제도를 도입했다. 민들레의료생협도 얼마전부터 조합원을 중심으로 건강화폐 '조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레츠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쯤에서 궁금하다. 우리고장에서도 레츠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레츠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김성훈씨의 말을 들어보자.

"레츠는 간단합니다. 쪽지 두 개 들고서 사람들 필요한 거 다섯가지씩 써 내라고 하고 그거 다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겁니다. 자기가 필요한 건 뭐고 줄 수 있는 건 뭐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는 특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으면 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게 한 두가지는 있습니다. 한밭레츠 회원 중에 평소 폐병 있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맹인 분을 동사무소까지 안내하는 품앗이를 한 적이 있어요. 폐병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분이 자기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런 게 레츠입니다. 협동조합이라는 형식이 협동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고 레츠라는 제도가 나눔을 만들어 주는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느냐. 그 마음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취재지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본기사는 옥천신문의 동의하에 중복게재 한 것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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