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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농법
     
김성훈 조회수 1,817   등록일자 2000-12-04 13:04:46
귀농통문 15호, 우승수, 1999년에 전북 부안군 변산면으로 귀농하였다.

살구주스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이곳 변산에 와서야 살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무화과! 나도 첨 보았다. 쌀만 구경한 아이들이 벼가 자라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아비로서 가슴 뿌듯했고 아이들은 나락 영글 듯이 영글어 가는 듯 하다.
작년 이곳에 와서 처음 힘들게 했던 일은 울이네 마늘밭에 비닐 멀칭을 할 때였다. 어찌나 밭이 넓어 보였는지 비닐을 깔아도 끝날 줄 몰랐다. 그러나 '아이고 죽겠다!' 싶으면 오전 참이 나왔다. 한 이십분 쉬고 또 비닐을 깔았다. 정말 죽겠다 싶으면 점심 먹자고 한다. 한 시간이나 쉬었나 오후 일이 시작된다. 정말 농사일은 못할 이이다 생각되었는데 쥔은 그것을 눈치라도 챈 듯 오후 참을 내온다. 바지락으로 국물맛을 낸 국수를 말았는데 시원한 국숫물에 바지락 씹는 맛이 보통이 아니다. 양념 간장 치고 얼마나 먹었는지…. 이맛에 농사짓는 모양이다. 힘들어도 버틸만은 한 것 같다. 오후 참 후에는 그래도 얼마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훨씬 수월한 것 같았다.
어느덧 해는 서해 바다 속으로 숨어들고 그 넓은 밭에 온통 멀칭 비닐이 깔려 버렸다. 휴우-. 그래도 반드시 끝은 있는 거구나. 새끼들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지 하면서 경운기 짐칸에 올라타면서 찌든 수건으로 얼굴이며 가슴, 등줄기의 땀을 훔쳤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경운기는 집으로 가질 않고 낯선 곳으로 달리지 않는가? "어데 가요?", "학교 옆-." 아이고! 마포 학교 옆에 한 마지기 또 남았다고 하질 않는가. 나는 그날 어두워질 때까지 죽었다. 쥑이는 이야기다.

이곳에 귀농한지 며칠 되질 않아서 끌려(?)간 곳은 온통 붉은 고추밭이었따. 전부가 여인네들인데 나 혼자만 남정네다. 첫인상이 중요하니 열심히 해야지. 그러나 붉은 것보다는 퍼런 고추를 자꾸 따게 된다. 얼핏 보면 익은 놈이 따고 보면 덜익은 놈이었다. 이거 좀 정하게 따야겠구나 싶어서 속도를 늦추니 여인네들은 고랑 저쪽으로 멀어져 있었다. 속도를 맞추면 덜익은 것 따고 익은 것만 따자면 발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 농사지을 일이 막연히 걱정스러웠다.
나중에 그때 고추작업의 힘들었던 일을 동네 사람에게 토로했더니. "고추? 그거 남자가 못혀~. 여자일이여~. 남자가 무신 고추를 딴디야~."
하기야 우리 가정사에서만 보더라도 여자가 고추따지 나자가 무신 고추를 따랴.
옆집 희영이 할머니가 묵은 땅 400평을 소개해 주었는데 욕심에 능력도 검증해 보지 않은 채 덜컥 받아 삼켰다. 희영이 아빠왈, "승수, 니가 이밭과 저밭까지 다 할 수 있냐아?" 그랬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산이 되어버린 밭을 포크레인 들이대야지 돌 주워내고 로타리 쳐야지. 이미 콩심기는 늦어지고 있다고 하지. 쥔이 급한 마음에 포크레인 불러서 평탄작업은 해주었는데 돌 주워낼 틈도 없이 로타리 칠 틈도 없이 촉박한 일정에 그대로 콩을 심기로 했다. 콩 심으로 온 울이 아빠가 그런다.
"아니이~ 형님! 로타리도 안 치고 콩을 심는디야~."
"음-, 보통은 밭을 만들고 작물을 심는데 나는 새로운 농법을 개발했지. 즉 작물을 먼저 심고 그 다음에 도도 주워내고 밭도 고른다는 거꾸로 가는 이것이 거꾸로 농법인데 국내에서는 내가 곧 거꾸로 농법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지."
정말 올여름 나는 그 밭에 진절머리 나도록 매달렸다. 지금은 동네 사람들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콩이 잘 되었다.
"워째 약도 안 치고 저렇게 잘된디야~."

뜻하지 않게 논 500평이 생겼다. 퇴비장의 총각이 받아놓은 논인데 자기는 힘에 버거우니 나보고 부쳐 보라고 했다.
"잘 됐네에! 안 그래도 양식은 했으면 싶었는데!"
대답은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 것도 몰랐다.
"거어, 논에 지프락 걷어내야지~" 하면 그제사 부랴부랴 짚 걷어냈고,
"볍씨 뿌렸어?"
"언제?"
또 그때부터 이리저리 뛰면서 바빠져야만 했다. 그러니 항상 남보다 두 걸음 쳐져서 정신없이 쫓아가는 것이었다.
한번은 이형이 불렀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에~ 우형! 내가 홍성에서 교육받은 바로는 논에다 물을 대고 모내지 전에 쌀재(쌀겨)를 뿌린다는구먼, 한 5㎜두께로 피복하면은 풀이 안 난디야. 그 농법으로 한번해보시오."
"쌀겨가 없는데요."
"음-. 퇴비장에 가면은 내 쌀재가 있으니 갖다 쓰시오. 맘놓고 둠뿍듬뿍 뿌리쇼. 첫떼기에 10개, 둘째 빼미에 8개, 셋째에 7개 뿌리시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이곳 사람들은 그를 부처 같은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도 항상 그가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것은 느껴왔었다.
이형의 엄숙한 지령에 나는 정말로 똥줄빠지게 뿌려대었다. 1톤이 넘는 쌀겨를 일일이 일륜차에 실어와서 삼태기 담아서 푹푹 빠지는 논바닥을 이리저리 헤메었다. 그날 먹은 깡소주 반되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몸살이 다 날 지경이다.
그런데 쌀겨를 다 뿌리고 난 후에 주위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TEk. 논이 시커멓게 변해가면서 쌀겨 기르이 둥둥 뜨기 시작하였다. 지나가시던 동네 어른이.
"거, 뭐 뿌린거여~?"
"쌀겨요!"
"쯧쯧, 쌀재는 겨울에 뿌려서 삭혀야 하는 것이여, 쌀재가 얼마나 독한 건디."
"저런 논은 쌀재가 다 삭으려면 열흘이나 보름은 더 있어야 하는디."
그렇잖아도 모내기가 늦어버린 나는 큰일이구나 싶었다.
"아녀. 물을 크게 대었다. 기름을 뺀 다음 모내기 해야디야."
도대체 영무을 모르겠다. 시키는 대로 곰상히 했는데 그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이형이 머리를 끌쩍거리면서,
"우형! 내가 착각한 것 같으여. 아무래도 쌀재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여 그래도 어쨔. 꼬시라질 때 꼬시라질 값이라도 일단 모내기는 해봐야지."
우이 아빠를 부러서 이앙기를 들여댔다. 그래도 내 쌀 먹겠다고 얼음물에 미숫가루 걸쭉하게 타서 내왔다.
"설마?"
울이 아빠는 연신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면서도 모내기를 끝내주었다.
"형니. 잘못하는 거 아녀?"
그랬다. 모는 크는 것이 아니라 그후로 점점 오그라들기만 했다. 파릇파 한 모가 누렇게 변해들면서 실처럼 가늘어져만 갔다.
"형님은 발뻗고 자도 누구는 지금 밤잠도 못 자네."
이형이 그랬다.
"우형, 논땜시 심려 크지요. 내 우형 먹을 쌀은 줄게."
이형이 처연해 보였다.
"아, 괜찮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형이 고맙소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뭐가 잘못되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보다야 잘못 가르쳐도 가르쳐주는 것이 고마운 거요."
며칠 후 은순 아빠가 쫓아왔다.
"우형! 큰일났네. 자네 논의 쌀재 기름이 우리 말 못하는 형님네 논으로 흘러들어서 모가 막 꼬시라지고 있네. 우리 형님이 그것도 모르고 병걸렸다고 지금 막 약을 치고 난리가 났네."
"아이고, 어쩌지. 내 가서 사과해야겠네."
"안 되네, 지금 가면 살인 나니 자네는 가만있게."
은순 아빠는 기어코 이형에게 쫓아갔던 모양이다.
"농사를 가르쳐 줄라면 똑바로 가르칠 것이지 자기도 모르는 농법을 워째 남을 가르친디야~"
그후 나는 이형을 찾아갔다.
"휴우-, 내 그놈의 논 땜시…."
이형의 안색이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 우리는 꼬시라진 모를 다시 로타리 치고 우여곡절 간신히 그한 모로 다시 모내기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모작이라고 놀렸고 시기가 늦어서 우렁이 살포도 하지 못한 그 논에 김매기 두 번으로 지금은 짱짱한 벼에 이삭이 패기 시작하였다.
이형 표정도 밝아졌다.
"우형! 어디 모만 꽂으면 벼가 큰디야~. 논뚝도 깍고 그래야지~" 그는 다시 근엄한 선생으로 돌아왔다. 그래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제 서울이 보이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우짤꼬! 아빠의 객기가 아이의 꿈을 깨놓고 말았다. 남부지방 집중호우-경보-주의보-경보. 며칠째 하늘은 인간에게 기어이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기세로 단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비를 퍼부었다. 그 동안 400mm에 가까운 비가 내렸고 불안하였지만 할 일은 없었다. 『귀농통문』에 보낼 그이나 쓰자고 배를 깔았다. 한참 써내려 가는데 화정이가 묻는다.
"아빠 뭐해?"
"글 써!"
"무슨 글?"
"책에 낼 글!"
"책? 우헤헤, 아빠가 무슨 책에다 글을 내에~."
"이 녀석이. 임마, 아빠 글 책에 났었어!"
"거짓말!"
홧김에 내 이름이 새겨진 『귀농통문』을 펼쳐주었다. 우쭐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글을 한참 읽던 녀석은 무서운 얼굴로 대든다.
"아빠! 아롱이가 똥개여! 아롱이가 삼만원이었어?"
드디어 천장에 비가 새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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