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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리 라는 아이...
     
나준식 조회수 944   등록일자 2001-05-14 17:18:56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누리는 웬만한 일에 겁이 없어졌다.
첨 보는 벌레도 덥석덥석, 얼마전에는 도룡농 꼬리를 잡았다가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도룡농을 끝까지 추적해서 몸통을 잡고는 통쾌해 하는가 하면, 브레이크도 잘 못잡으면서 네발자전거의 속력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다가 여러차례 곤두박질 쳐 양쪽 팔꿈치는 성할 날이 없고, 70도 정도 되는 암벽을 10여미터 기어올라가 바위미끄럼을 타는 섬찟한 장면들도 거리낌 없이 연출한다.

문제는 그런 만큼 고집과 떼쓰기도 늘었고, 이상하리만치 욕심도 많아졌다. 나누리라는 이름이 무색할만큼... 이 문제는 지금 우리집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중 하나다.
딸기는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누리와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바깥에 데리고 나가면 욕심과 고집으로 엄마, 아빠를 난처하게 할 만한 상황을 끊임없이 연출한다. 지는 아이, 양보하는 아이, 나눌 줄 아는 아이를 키우겠다는 부모의 기대를 보란듯이 짓밟으며 말이다.

일요일, 아침 7시 잠들어 있는 누리를 들쳐메고 나서서 밤 12시 집에 들어설 때까지 누리와 함께 지내면서 순간순간 많은 생각들을 했다.
돌아보면 그동안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것으로 많은 부모의 고민을 대신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떨어져 있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문제가 생겨도 당장의 갈등과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쉽게 선택해 왔다.
거의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지내야 했던 때에는, 매 순간 아이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썼고 집중을 했었는데... 물론 지금은 동생이 있어서 시간이 있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어제는 하루종일 계속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려야 했지만, 어쨌든 누리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내가 누리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였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아빠의 부탁이 효력을 발휘하거나, 적어도 들은 채도 안한다든가, 반사적으로 싫다고 반발하는 모습이 없었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을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에 그걸 날적이에 정리했다. 그리고 무난히 오늘 아침은 넘기나 싶었다.

우선, 아이가 자기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형태인 욕심, 고집이란 걸 부정적인 것으로만 몰아부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은 여기서 억눌림이 출발하는 것 아닐까 싶다. 솔직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면 훈계를 들어야 하는 아이가 자유롭게 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고집이나 욕심, 그 감정이 얼마나 아이의 솔직한 감정인지를 공감해주어야 한다. 어른인 나도 맛있는거 내가 먼저 더 많이 먹고 싶고, 좋은 거 내가 먼저 차지하고 해보고 싶은 감정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러면 아이는 어느새 대립적인 위치에서 걸어나와 나와 같은 편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상황의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른인 나처럼 다른 아이나 다른 어른들도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 역시 당연하고, 여기에서 갈등이 생기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같이 의논해보려고 하지만, 아이는 여기서도 내가 먼저, 나만, 내맘대로를 고집한다.

여기서는 상대방, 아니 아이와 같은 편에서 , 같은 감정을 느끼는 아빠의 마음이 먼저 아프고 슬퍼진다는 점을 전달한다. 굳이 사회적 규범, 규율을 들먹일 이유가 없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있으면 실제로 그런 감정이 느껴지고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억지로 꾸며내는 감정은 아니다.
물론 그 감정에는 내맘대로 하고 싶은 또 다른 상대의 심정, 아이에 대한 기대를 가진 부모로서 느끼는 자책과 같은 아픈 심정이 복합되어 있다.

비록 매번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할 지라도 일관된 부모의 모습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수준에서 해결책을 찾다보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그만큼 아이와 부모는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져 있음을 느끼면서 훨씬 덜 고집부리고 덜 안달하고 어느새 잘 통하는 친구사이처럼 다가온다.

뭐, 이런 결론인데...
물론 한번의 공감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백번 수천번이라도 같은 상황을 맞이하겠노라는 정도의 결심은 있어야지.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전화 속에 들려오는 누리의 울음소리....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모래놀이를 하고 가겠다고...

나지막히 얘기했다.
'얼마나 하고 싶을까 그것도 지금... 아빠가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누리의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그런데 지금은 아빠도 일해야 하고 누리도 시간이 없으니까...어린이집 갔다와서 하자. 응? 아빠가 꼭 같이 해줄게'
다시 누리의 울음소리는 커진다.
딸기도 곁에서 같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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