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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기 하나만 팔아주라
     
나준식 조회수 1,098   등록일자 2001-04-16 14:39:59
점점 머리가 아파오고 속도 편치 않다.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카드매출전표를 꺼내본다.
횟집에서 육만사천원, 단란주점 삼십사만원...이렇게 비싼 술값을 내본 건 처음이다.

애들 책 사주겠다고 인터넷을 뒤지며 싼 값의 중고 책들을 찾던 아내가 떠오른다.

멀리서 25년만에 찾아온 친구가 비싼 술 한잔 사겠다는 성의를 거절할 수도 없었지만, 
그 술값을 그가 내게 할 수도 없었다. 
돈이 필요해서
가족과 신의를 지켜내려 스스로를 포기할 각오를 굳게 다진 채 나를 찾아온 그에게 
그 술값을 내게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낸 그 술값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자신을 위안하는 의식이었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냉정한 계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로부터 전화가 온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어제 그렇게 분명히 얘기했는데 전화가 올까? 어제 내가 한 말처럼 정말 나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까?'

전화를 바라본다. 곧 벨이 울릴 것 같다.
입에 고이는 신물을 꿀꺽 삼키고 할 말을 가다듬어 본다.
"제발 다른 방법을 찾아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해..."

나중에 그의 얘기를 통해 그와 내가 중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걸 알게됐지만, 내겐 초등학교 시절의 몇 가지 기억이 전부인 그 친구로부터의 갑작스런 연락을 받은 건 닷새 전 일이다.
3년 전부터 날 찾았고 연락이 닿지 않다가 우연히 내가 이 곳 대전에 사는 것을 알게 되어 연락했단다. 그리고는 당장 날짜를 잡으란다. 내려가겠다. 만나서 술 한 잔 하자고.
그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들은 아내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고 했고, 나도, 아니 요즘 세상에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게 당연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게 먼저인 것은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옛날 같으면 기관원이 아닐까 의심도 했을 법 하지만...설령 그가, 자라온 환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범죄자가 되어 있더라도 나를 기억하고 찾아온 그를 나는 따뜻하게, 그리고 이 사회의 소외된 한 이웃을 만나는 정성으로 만날 생각이었다.

멀리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초등학교 시절 그대로였다. 
약간은 구부정하고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리를 약간 벌린 자세.
중학교를 마치고 화물차에서 버스운전, 농협을 거쳐 밭뙤기 농산물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그와
서로의 기억과 추억을 안주 삼아 횟집에서 소주 세 병을 비우고 일어설 때만 해도
어렵게 살아온 그가 이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서 정말 그의 말대로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싶어질 때가 있어서' 찾아왔으려니 했다.
조용한데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맥주집으로 들어갔다가, 한 잔 살테니까 조용하고 좋은데로 가자고 일으켜 세우는 그의 표정에서 얼핏 조금은 긴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가 날 단란주점으로 이끌었을 때, 그와는 다른 '티'를 느끼지 않게 무심한 척 신경을 좀 쓸 뿐
그리고 뭔가 제안이 있을 거라는 아내의 얘기를 농담 삼아 던졌을 때, 제수씨가 참 정확하게 봤다고, 할 얘기는 마지막에 하겠다고 하는 반응도 그저 농담반 진담반으로 흘러넘겼다.
그런데 노래도 두 곡씩이 돌아가고, 양주가 두 병째 비워지면서 그 친구의 표정이 오히려 조금씩 굳어져 가는 걸 느꼈다. 
어려워하는 그를 내가 재촉했다. 얘기 먼저 하라고.
그는 마침내 굳은 표정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장기 하나만 팔아주라"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술에 취했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무슨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데리고 있던 애한테 사기를 당했다. 이래저래 대출 받고 해결했는데 이제 이천사백 남았다. 나를 보증해준 사람들에 대해서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세 아이들, 그리고 아내와 갈 곳이 없어진다.'

그 자리에서 그의 말이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구분해보겠다는 내 머리속의 시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눈물까지 훔쳐가며 같은 말만 반복하는 그에게 난 끊임없이 발을 빼려고만 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의사로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도 그런 거래가 있다는 걸 네가 아는 만큼밖에 모른다. 병원 화장실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라도 알아봐주랴. 그리고 그렇게 절실하다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나'

'도와달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로 얼마나 실랑이를 했을까.
우리는 일어섰다. 계산대 앞에서 주춤거리는 그를 밀치고 카드를 내밀었다. 
미리 계산을 했었는지, 영수증을 받아 나오는 내 뒤로 주인과 그는 무슨 계산을 하는 듯 했다. 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집 앞까지 걸어오면서 우린 별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5층 아파트 복도에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봤다.
의사 친구라면 뭔가 해줄 수 있을 거라는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달려왔을텐데...젠장, 하늘엔 별도 없었다.

밭 한가운데 비닐을 엮어 만든 천막 같은 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란 그는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순박한 친구였다. 
당시에 그의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 뻘 되는 나이셨는데, 그 때문인지 친자식이 아니라 데려다 키운다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우리집 가게에서 꺼내주는 하드 하나 얻어먹으려고 나를 업고 학교에서 집까지 10리 산길을 자주 달리곤 했단다.
헛발질만 하는 자기를 축구시합에 끼워주었던 걸 아직도 잊지 않고 고마와했고, 그동안 밭뙤기로 농산물 중개를 하면서도 농민들에게 어거지 한번 쓴 적 없다 했다. 농군의 자식임을 어찌 잊고 그러겠냐고, 차라리 자기가 손해를 감수한다고 했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부디 내가 주지 못한 희망을 어딘가에서 찾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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