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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게를 뽑기상품으로 내건 세상
     
나준식 조회수 1,916   등록일자 2000-08-18 21:57:53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기자로 활동하는 나준식 가족의 글 퍼옴-

소라게를 뽑기상품으로 내건 세상
한순간의 기쁨을 위해 팔리는 작은 생명들


나준식 기자 knajs@dreamwiz.com

2주전 경기도 구리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조카녀석이 ‘소라게’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소라모양 과자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조르던 녀석은 하루 용돈 오백원으로는 안된다던 그 ‘소라게’를 사왔다.

놀랍게도 그 ‘소라게’는 조그만 집게(소라 껍데기에 집을 짓고 사는 게)였다. 조그만 통에 바닥이 살짝 덮힐 정도 깔린 톱밥 사이에 엄지손톱만한 두 마리의 소라게를 담아서 나타난 것이다.

조카는 생명을 가진 동물에 호기심을 보일 나이가 되었는지, 길거리에서 파는 강아지니, 집을 잃은 고양이니 할 것 없이 데려다 키우자고 떼를 쓰곤 했는데, 문구점에서 파는 이 소라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천원으로 ‘뽑기”에서 사탕 대신 뽑아왔다는 그 소라게를 이 도시에서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다, 전날 내린 빗물이 고인 놀이터의 모래와 흙으로 두툼하게 쉴 곳을 만들어 주었다.

바깥에서 돌아온 조카녀석은 모래흙 속에 숨어 있는 줄 모르고, 오자마자 통을 들여다보고 내 소라게 찾아내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틀 동안 소라게는 방바닥 여기저기서 발견되다 마침내 조카의 관심이 멀어진 사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어느 바닷가 갯벌에서 잡혀 와서 도시의 시궁창이나 쓰레기 더미 어디에서 죽어갔을 그 집게를 잊고 지내던 지난 일요일에 나는 다시 한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 조카녀석은 집안을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 놓았다고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유인 즉, 이번에는 ‘뽑기’로 횡재한 ‘물고기’때문이었다.

녹아서 산소를 발생한다는 개구리알처럼 생긴 초록색 알갱이가 담긴 비닐봉지에 밀봉되어 있었다는 그 물고기는 겨우 2-3cm 정도의 새끼였다. 물고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관상용 물고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단지 아이들의 ‘뽑기’는 역시 천원짜리였다.

조카는 그 밀봉을 뜯어내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놓쳤는지 설겆이 그릇에는 먹이라고 넣어 준 과자부스러기 밑으로 한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초록색 산소알갱이와 물고기를 조그만 병에 담아 주면서 도무지 속이 편치 않았다. 어항에서 기르라고 파는 것이겠지 하고 지나치기에는 지난 번의 그 집게가 떠올라, ‘인간’들의 사나운 심사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어릴 적 학교 앞 길가에서 파는 노오란 병아리를 사서 키워본 일도 있고, 냇가에서 붕어니 가재도 잡아먹고, 풀숲의 개구리를 잡아 못할 짓도 하고 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미물들은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호기심과 사행심을 자극하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문구점에서 숱한 꼬마들에게 ‘뽑기’로 팔려나갔을 그 물고기들이 어항이나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는 물을 만나지 못할 것이 안타깝다거나, 산소덩어리가 다 녹아버리는 순간 밀봉된 상태로 죽어갈 물고기들이 안됐다는 생각은 다음 문제다.

무엇보다, 삭막한 도시에서 자라면서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어우러지는 미물들의 생명력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생명에의 경외심을 갖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생명이 고작 몇 백원, 몇 천원의 ‘뽑기’로 얻는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소라게와 물고기를 판다는 곳은 꽤 떨어진 곳의 아파트 단지 부근 문구점이라고 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찾아갈 수도 없고, 내일 아침에는 그 곳을 떠나와야 하는 처지라 물고기가 밀봉되어 있던 비닐봉지만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냈다.

‘피시피시’라는 상표제목과 아이가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그림, 그리고 맨 아래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지역번호를 보니 경기도 구리 시내였다. 다음날 전화를 했다.

공장의 주인쯤으로 생각되는 여자분은 “이건, 특허상품이다”라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귀찮아했다. 물고기는 ‘제브라다니오’라는 열대어로 국내 양어장을 ‘끼고’공장에서 만든 것이라 했다. 소라게는 수입한 것이란다.

그런 관상용 물고기가 왜 아이들이 이용하는 문구점에서 그것도 ‘뽑기’로 팔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모르는 일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특허청에 전화를 해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 상표등록이 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다시 공장에 전화를 하자 특허 출원 중이라는 말만 하고 더 이상의 얘기는 해줄 수 없다며 불쾌해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정당하게 애완용 동물이나, 관상용 물고기로 허가 받고 팔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의식, 아니 집안의 개미는 손가락으로 눌러, 테잎으로 붙여 쉽게 죽이면서도 놀이터의 개미를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는 괴롭히지 말라고 타이르는 내 의식조차도 양면적인데 말이다.

인간을 생명이나 자연에 앞세우는 것이 오히려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현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과연 어떤 인간적인 길일까?





한순간의 기쁨을 위해 팔리는 작은 생명들


나준식 기자 knajs@dreamwiz.com

2주전 경기도 구리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조카녀석이 ‘소라게’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소라모양 과자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조르던 녀석은 하루 용돈 오백원으로는 안된다던 그 ‘소라게’를 사왔다.

놀랍게도 그 ‘소라게’는 조그만 집게(소라 껍데기에 집을 짓고 사는 게)였다. 조그만 통에 바닥이 살짝 덮힐 정도 깔린 톱밥 사이에 엄지손톱만한 두 마리의 소라게를 담아서 나타난 것이다.

조카는 생명을 가진 동물에 호기심을 보일 나이가 되었는지, 길거리에서 파는 강아지니, 집을 잃은 고양이니 할 것 없이 데려다 키우자고 떼를 쓰곤 했는데, 문구점에서 파는 이 소라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천원으로 ‘뽑기”에서 사탕 대신 뽑아왔다는 그 소라게를 이 도시에서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다, 전날 내린 빗물이 고인 놀이터의 모래와 흙으로 두툼하게 쉴 곳을 만들어 주었다.

바깥에서 돌아온 조카녀석은 모래흙 속에 숨어 있는 줄 모르고, 오자마자 통을 들여다보고 내 소라게 찾아내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틀 동안 소라게는 방바닥 여기저기서 발견되다 마침내 조카의 관심이 멀어진 사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어느 바닷가 갯벌에서 잡혀 와서 도시의 시궁창이나 쓰레기 더미 어디에서 죽어갔을 그 집게를 잊고 지내던 지난 일요일에 나는 다시 한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 조카녀석은 집안을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 놓았다고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유인 즉, 이번에는 ‘뽑기’로 횡재한 ‘물고기’때문이었다.

녹아서 산소를 발생한다는 개구리알처럼 생긴 초록색 알갱이가 담긴 비닐봉지에 밀봉되어 있었다는 그 물고기는 겨우 2-3cm 정도의 새끼였다. 물고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관상용 물고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단지 아이들의 ‘뽑기’는 역시 천원짜리였다.

조카는 그 밀봉을 뜯어내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놓쳤는지 설겆이 그릇에는 먹이라고 넣어 준 과자부스러기 밑으로 한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초록색 산소알갱이와 물고기를 조그만 병에 담아 주면서 도무지 속이 편치 않았다. 어항에서 기르라고 파는 것이겠지 하고 지나치기에는 지난 번의 그 집게가 떠올라, ‘인간’들의 사나운 심사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어릴 적 학교 앞 길가에서 파는 노오란 병아리를 사서 키워본 일도 있고, 냇가에서 붕어니 가재도 잡아먹고, 풀숲의 개구리를 잡아 못할 짓도 하고 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미물들은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호기심과 사행심을 자극하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문구점에서 숱한 꼬마들에게 ‘뽑기’로 팔려나갔을 그 물고기들이 어항이나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는 물을 만나지 못할 것이 안타깝다거나, 산소덩어리가 다 녹아버리는 순간 밀봉된 상태로 죽어갈 물고기들이 안됐다는 생각은 다음 문제다.

무엇보다, 삭막한 도시에서 자라면서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어우러지는 미물들의 생명력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생명에의 경외심을 갖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생명이 고작 몇 백원, 몇 천원의 ‘뽑기’로 얻는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소라게와 물고기를 판다는 곳은 꽤 떨어진 곳의 아파트 단지 부근 문구점이라고 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찾아갈 수도 없고, 내일 아침에는 그 곳을 떠나와야 하는 처지라 물고기가 밀봉되어 있던 비닐봉지만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냈다.

‘피시피시’라는 상표제목과 아이가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그림, 그리고 맨 아래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지역번호를 보니 경기도 구리 시내였다. 다음날 전화를 했다.

공장의 주인쯤으로 생각되는 여자분은 “이건, 특허상품이다”라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귀찮아했다. 물고기는 ‘제브라다니오’라는 열대어로 국내 양어장을 ‘끼고’공장에서 만든 것이라 했다. 소라게는 수입한 것이란다.

그런 관상용 물고기가 왜 아이들이 이용하는 문구점에서 그것도 ‘뽑기’로 팔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모르는 일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특허청에 전화를 해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 상표등록이 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다시 공장에 전화를 하자 특허 출원 중이라는 말만 하고 더 이상의 얘기는 해줄 수 없다며 불쾌해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정당하게 애완용 동물이나, 관상용 물고기로 허가 받고 팔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의식, 아니 집안의 개미는 손가락으로 눌러, 테잎으로 붙여 쉽게 죽이면서도 놀이터의 개미를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는 괴롭히지 말라고 타이르는 내 의식조차도 양면적인데 말이다.

인간을 생명이나 자연에 앞세우는 것이 오히려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현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과연 어떤 인간적인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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