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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쓰는 봄편지 (푼글-말5월)
     
나준식 조회수 1,052   등록일자 2001-05-09 09:26:49
(글쓴이 이 석씨는 196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농민운동을 하는 대학동기와 1994년 결혼하여 청송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민해 아빠.

당신은 농민으로, 난 그 아내로 살아온 지 8년째 접어듭니다. 아침 숟가락 놓기 무섭게 당신은 과수원으로 논으로 나섭니다. 오전이 가도록 당신의 뒷모습이 눈에 어려도 난 햇볕에 타지 않을 궁리를 하며 늑장을 부립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차라리 몰라서 더 용감하게―시집와서 울고 싶도록 막막했는데 이젠 약줄을 잡아도 어색한지 모르고 허기도 잊은 채 뙤약볕 아래 호박을 땁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포장하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공판장으로 달리는 일이 생활이 됐습니다. 여름 생활비 벌어 쓰는 재미에 살갗 따가운 호박잎도 문제없이 땁니다. 조금씩 촌살림―사실은 빚더미 속에 사는 방법―에도 적응해 가고 시골할머니 정서도 익숙해지며 사투리가 오히려 편합니다.

가까운 병원이 없어 한 시간 거리의 안동이나 영천으로 수없이 다니며 가슴을 졸이게 했던 두 아들이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되어 기쁘게 하더니 다시 그들의 자람이 마음을 누릅니다. 그림이 그리고 싶은 민해,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조르는 대현이, 그들의 바람을 들어 줄 수 없는 환경과 경제적 형편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한물 간 비디오테이프가 문화생활의 전부여도 난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단단한 땅과 따뜻한 햇빛, 맑은 바람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마음이 곱고 강한 아이로 자랄 테니까요.

봄입니다. 그러나 쪼들리는 살림이 더 힘겹습니다. 지난해 겨우 연체를 면했다고 한숨을 돌렸더니 농자금 없이는 농사를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리저리 계산기만 두드려 대는 저에게 당신은 시집 잘 못 왔다고 농담하며 내내 애처로워합니다.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당신 책임이 아님을 압니다. 누구 할 것 없이 어려운 농촌살림이지만 당신의 어깨는 더 무거운 것 같습니다. 낮에는 땀에 절게 일하고 밤이면 회의다 모임이다 나가는 바쁜 일과가 안타깝습니다. 나도 일곱 식구 뒷바라지에 서서히 몸과 맘이 지쳐갑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털어 버리려 당신에게 이 글을 씁니다. 좀 더 단단한 다짐을 하려고 말이에요.

올해 저의 바람은 이러합니다. 당신은 살맛 나게 농사짓고 훌륭한 농민운동가로 역할을 다 해내고, 난 누구의 아내에 앞서 두려움 없는 농사꾼이 되었으면 합니다. 건강한 우리 아이들이 늘 건강한 웃음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 받고 빚 걱정 없이 살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와서 이 땅의 모든 농민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211.230.17.246 회오리 05/09[10:22]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과 평화의 마음보다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편지네요...남편의 믿음직한 등짝만으로 행복할 여유가 지금 우리 농촌엔 없는 것인가봐요..- _ -

211.58.130.39 직선지기 05/09[11:34]
안쓰럽다는 말밖에.... 하지만 희망으로 밝게 웃을날도 멀지 않음이 느껴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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